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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제도이기 전에 문화다
저작권, 제도이기 전에 문화다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건축업계필자의 직업은 건축가다. 그런데 종종 나 자신을 ‘건축 콘텐츠, 혹은 건축 저작권 사업자’로 소개한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실제로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이렇게 말하면 상대가 나의 저작권에 대해 좀 더 진지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만큼 건축 분야의 저작권 개념은 희박하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저작권 귀속 관련 규정이다. 즉 설계 계약을 할 때 ‘저작권은 발주처에 귀속된다’는 규정이 들어가는 것이다. 같은 내용이 현상공모의 지침에 미리 들어가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것은 이미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무효 판정을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놀랍게도 공공기관이 더 심하다. 그런데 그 내막을 알고 나면 좀 어처구니가 없다. 몇 년 전 모 지자체의 현상공모 지침에 그런 내용이 있어서 항의 차원에서 전화를 했다. “제 아이가 그 지자체에서 주최하는 경시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으면 그 지자체 아이가 됩니까?”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현상공모를 진행하다 보면 보도, 전시, 홍보 등을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동의를 구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본 건과 관련된 보도, 전시, 홍보 등에 대한 자료의 활용에 대한 한시적 동의를 구한다’라는 간단한 문구로 해결될 문제를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키운 것이다. 즉 저작권 개념에 무지한 탓에 엉뚱한 문제를 만들었다. 누군가 시작한 잘못된 관행을 서로 인용하고 참고하다 보니 그것이 퍼져나간 결과다.
빈번하게 발생하는 저작인격권 침해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건축 분야에서는 종종 저작인격권과 관련되어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한다. 간단히 말해서 어떤 건물을 이야기하면서 설계자 이름을 빼는 것이다. 이런 경우 그 건물은 ‘고아’가 되고 건축가는 ‘유령’이 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일부의 유명 건축가들, 혹은 외국 건축가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이 유령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신문 등 각종 매체의 기사에 건축물이 등장하는 경우 건축가 이름이 함께 소개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건축 관련 공공서류에 설계자 이름 항목이 생긴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으며, 조금만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나마 공란으로 비어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도저히 근현대 건축의 흐름을 정리하기 불가능할 정도다. 한국 근현대 건축사를 유령 건축가들의 역사로 접근하는 학자가 있을 정도다.
그나마 이런 경우는 단순 과실이나 태만으로 치부할 수도 있으나 고의성이 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경우가 공공기관의 보도자료 등에 일부러 건축가 이름을 누락시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알고 보면 섬뜩하다. ‘왜 공공기관이 민간 업체를 홍보해야 하냐’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는 무지이며 반문명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저작권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면 국가의 법과 질서를 공공기관이 정면으로 파괴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일을 겪으면 피해 당사자가 알아서 법적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런 일을 해결하라고 만든 단체나 조직이 우리 사회에는 없는 것인지, 무엇보다 공공기관은 자체적으로 잘못을 인식하고 시정하는 능력이 없는 것인지 등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 수밖에 없다. ‘이런 일로 법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건축설계 보다 좋은 사업일 것’이라는 농담이 만연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 누군가가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할 때마다 분야 전체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의욕이 상실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 공공기관이 나서서 한 분야의 경쟁력을 침체시키고 있는 것이다.

권리자와 이용자가 함께 피우는 꽃그렇다고 제도적 강제력이나 처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보다 심층적으로는 결국 문화의 문제다. 위에서 열거한 문제들을 오직 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과연 효과적일까? 물론 몇몇 케이스를 시범타로 삼아 건축 관련 단체에서 본격적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와 병행하여, 혹은 이와 못지않게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마땅히 해야 할 뿐 아니라 근사한 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의 경험으로 보면 유감스럽게도 오히려 민간이 공공보다 이런 면에서 훨씬 더 앞서 있는 듯하다.
마침 최근 설계한 건물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 대기업 생활을 마감하고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길로 나선 건축주가 있었다. 자기의 건물 일부를 그런 용도로 사용하고 있었고 그 건물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 건물의 조립식 블록 모형을 만들고자 했다. 마침 특허권이 소멸된 레고의 기술을 응용하는 스타트업 회사가 국내에 있었다. 건축주와 나, 그리고 그 회사 대표가 만나 함께 저작권 계약서를 작성했다.
나는 설계 도면을 제공한 대신 저작권료로 그 조립식 모형을 일정량 받았으며, 우리 회사의 홍보를 위해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건물에 대한 설명과 내 이름이 그 포장과 안내문에 들어간 것은 물론이다. 동시에 나는 그 회사를 주변에 널리 소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 건물은 더욱 잘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우리 모두가 승자가 되었다.
이 대목에서 김춘수 시인의 ‘꽃’을 떠올려 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라는 구절이다. 이 시는 저작권 문제의 핵심을 노래하고 있다. 즉 저작권은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빛깔과 향기를 갖고 있는 존재다. 다만 시인은 서로의 이름을 불러줘야 우리는 꽃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을 잊고 따르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도 꽃이 될 기회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우리가 창의적이고 소중한 존재, 즉 인간임을 서로 확인하는 것이다. 저작권은 결국 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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