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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사용에 대한 경고
무단 사용에 대한 경고
몇 년 동안 공들여 음원을 만든 작곡가는 방송 제작사 등에게 홍보를 부탁하며 CD를 건넸다. 그리고 어느 날,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자신의 음원을 듣게 된다. 음원 사용에 대해 명확하게 허락한 적 없는 작곡가. 그의 음원은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무단 사용에 대한 경고
유경준은 새로 나온 앨범 CD 겉표지에 메시지를 쓰다가 펜을 멈췄다. ‘서정적인 노래를 담았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한 줄을 더 쓰려 했는데 주저하는 마음이 다음 문장을 쓸 수 없도록 가로막았다. 몇 년간 공들여 만든 음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때문에 홍보를 위해 방송 제작사와 음악감독에게 CD를 나눠주려는 것이다. 잘 보여야 하고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하지만 음원의 창작자이자 저작권자인 자신의 권리는 지키고 싶다. 애쓰고 노력한 고생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고 상식적인 기대일텐데 왜 이걸 굳이 말하고 주장해야 하는 걸까. 무단으로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이 불편한 말을 왜 해야 하는 걸까. 그런 어필을 하는 자신이 남들이 볼 때 까탈스럽고 불편하면 어쩌지? 아니야. 아니야. 유경준은 이전에 법정을 오가며 고생했던 날이 떠올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사용된 나의 음원외롭고 힘들었던 모스크바에서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립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 창밖으로 익숙한 건물들과 넓은 한강이 보였다. 사람들의 수다소리와 지하철 방송으로 들리는 한국어. ‘아, 여기가 한국이구나. 드디어 돌아왔구나.’ 라는 실감과 함께 그간 고생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만족한다. 좋은 음악을 만들었고 목표했던 과정도 충분히 이수했다. 한창 더운 여름이었지만 유경준의 기분은 좋았고 불쾌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옆자리에 탄 한 남성이 스마트폰으로 볼륨을 올린 채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원치 않은 소음을 피하고 싶은 유경준은 다른 칸으로 옮기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난생 처음 보는 드라마에서 익숙한 음악이 들렸던 것이다. 처음에는 비슷한 음악이겠지, 라고 생각했고 나중엔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 표절한 것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비슷한 것도 표절도 아니었다. 그 음원은 그냥 유경준이 만든 음원이었던 것이다. 모스크바의 추위와 길고 긴 밤을 견디며 만들었던 바로 그 음원 말이다.
당황한 유경준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의 음원이 사용된 드라마에 대해 알아봤다. 혹시나 저작권자가 표기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엔딩 크레디트를 찾아 봤다. 없었다. 유경준이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편곡까지 마음대로 한 뒤 배경음악으로까지 사용됐다. 유경준은 기가 막혀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 음악을 만들면서 느꼈던 감정과 모티프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수백 번 새로 쓰길 반복했던 창작의 고통이 떠올랐다. 재정적 어려움까지 겹쳐 하루에도 수도 없이 포기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던 날들도 스쳐 지나갔다. 유경준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모든 게 짓밟힌 기분. 모든 게 부정당하는 느낌. 유경준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유경준이 알아본 바는 다음과 같다.
방송사 KBN과 제작사 로드 미디어가 드라마를 함께 제작했는데 로드 미디어 측에서 유경준의 음원을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유경준은 로드 미디어 측에 있던 박 PD를 곧바로 떠올렸다. 많이 사랑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홍보 CD를 건넸을 때 그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부드럽게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두드렸었다. 그랬던 그가 아무 말도 없이 무단으로 음원을 사용할 줄이야. 유경준은 로드 미디어에 전화해 박 PD를 연결해달라고 했다. 박 PD는 처음부터 다짜고짜 짜증을 내며 말했다.
“많이 틀어 달라면서요. 왜 이제 와서 딴소립니까?”
황당하고 화가 났지만 유경준은 최대한 차분히 항의하려 했다. 많이 틀어달라는 부탁은 무료로 사용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며 특히 마음대로 편곡한 것도 문제가 있다. 하지만 유경준은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박 PD가 전화를 끊어버린 것이다.

짚고 넘어가야 했던 저작권 사용 범위유경준은 결국 법원을 찾았다. 법정에서 만난 KBN쪽 사람과 로드 미디어를 대표하는 박 PD는 일관되게 주장했다.
“유경준으로부터 무료로 사용해도 된다고 구두로 허락을 받았습니다.”
드라마에 사용될 음원을 준비한다는 박 PD에게 유경준은 자신의 음원을 홍보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때문에 박 PD의 주장은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박 PD가 이를 ‘음원을 무료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한 것에 있다. 박 PD는 또 이렇게 주장했다.
“드라마의 경우 엔딩 크레디트에 음악감독만 표시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유경준이 편곡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과한 주장입니다. 편곡이 아니라 편집이니까요.”
유경준은 답답하고 억울했지만 이 모든 것을 공정하게 판단해줄 판사의 말을 기다렸다. 주의 깊게 양측의 주장과 문서를 확인한 판사는 결국 유경준의 손을 들어줬다.
“피고는 원고의 음원이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이 사건 드라마를 방영함으로써 원고의 저작재산권 중 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배포권, 대여권을 침해했다.”
하지만 유경준이 원하는 만큼은 들어주지 않았다. 드라마의 큐시트에는 원고의 성명이 표기돼 성명표시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하긴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판사는 음원을 복제, 공연, 공중송신, 배포, 대여해서는 안 되고 해당 드라마에서 위 음원을 삭제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며 원고에게 손해액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유경준은 다시 펜을 잡았다. 승소했지만 완벽하게 승소하지 못했기에 그때 그 사건을 생각하면 여전히 찜찜한 기분이 남아 있었다. 당시 로드 미디어 쪽에서 마음대로 편곡을 했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곡은 곡을 다른 형식으로 바꿔 꾸미거나 연주 효과를 달리하는 건데, 해당 드라마에선 방송 시간에 맞춰 잘라 붙였을 뿐 편곡을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유경준은 창작자이자 저작권자인 자신이 스스로 지켜야겠다고 판단했다. 음악 사용 기간이나 사용 방법, 사용료 지급 여부 등 저작권 사용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사건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은 것이다. 유경준은 CD 겉표지에 한 줄의 글을 더 써넣었다. ‘무단 사용은 지양해 주세요.’
무단 사용에 대한 경고
이 이야기는 홍보용 CD와 함께 음원을 홍보해 줄 것을 요청한 작곡가의 음원을 드라마 배경음악으로 무단 사용한 것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을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17. 12. 13. 선고 2016가합571624 판결]
피고는 원고로부터 음원을 무료로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구두로 받았으므로, 저작재산권이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법원은 이는 음악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음원을 사용해 달라는 것으로서 음원을 무료로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취지로까지 해석하기 어렵고 음원 사용 기간이나 사용 방법, 사용료 지급 여부 등 사용조건에 대한 어떠한 대화도 없었던 점을 들어 피고가 저작재산권 중 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배포권, 대여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글 _ 정용준 소설가, 〈바벨〉, 〈우리는 혈육이 아니냐〉, 〈가나〉 등 집필 그림 _ 이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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