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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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산업 속 불공정거래 관행과 창작자의 권리
영화산업 속 불공정거래 관행과 창작자의 권리
영화산업에도 다양한 형태의 불공정거래가 있지만, 영화산업 내부 창작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불공정성은 크레디트의 누락이나 영상저작물 특례규정으로 인한 저작권 혜택 배제가 중심이 된다. 불공정거래 관행 개선을 위해서는 우선 현행 제도를 통해 개선의 여지를 찾아 볼 필요가 있다.
영화산업의 여러 얼굴우리 국민이 한 해에 극장을 찾는 횟수는 단연 금메달감 이다. 2103년 4.17회를 기록하여 ‘세계 1위’라고 자평(自評)한 이래 매년 조금씩 상승하여 2017년에는 4.25회를 기록하였다. 2011년을 기점으로 한국영화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50%를 넘고, 2012년 이래 수익률도 연속 플러스(+)를 기록하고 있다.➊ 그러나, 2011년의 영화산업 수익률이 -16.5%였고, 2008년에는 무려 -43.5%를 찍었다는 통계는 영화산업이 흥행업이라는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국의 1948년 파라마운트 판결로 인한 상영관 분리에 대한 평가도 극단적으로 갈린다. 미국 영화산업의 위기를 자초하였다는 분석과, 결과적으로 영화산업을 건강하게 바꾸었다는 의견이 대립하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 해석은 국내 대기업의 영화산업 내 역할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일반론으로, 영화산업의 불공정거래는 이른바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 스크린 독점, 배급업과 상영업간의 수익분배 등과 관련하여 논의된다. 이들 문제는 공정거래법이 규율하는 불공정거래의 전형적인 유형에 해당하지만 저작권적 갈등과는 거리가 있다. 영화산업 내부 창작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불공정성은 산업적 담론과는 벗어나 있지 싶다.
오히려 창작자(특히 시나리오 작가)가 크레디트에서 빠지면서 느끼는 박탈감이나, 저작권의 포괄적 양도를 규정한 영상저작물 특례규정으로 인한 저작권 혜택의 배제가 관심 대상이고 이들 영역은 저작권법과의 직접적인 접점을 이룬다.

크레디트 - 재산권보다 더 재산적인 ‘성명표시권’ ➋작가이든 감독이든, 완성된 영화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권리는 저작인격권으로서의 ‘성명표시권’이다. 20세기 초반 프랑스 법원이 droit moral이라 칭한 저작인격권은 프랑스 판례와 마르크스 사상과 독일 칸트 철학의 혼합물이다. 1928년 베른협약 로마개정회의에서는 이탈리아 정부의 제안을 수용하여 협약의 범위를 저작인격권에까지 확대하였다(Article 6bis). 미국에서는 파라마운트 판결 이후 시나리오 작가들이 작가조합(WGA)을 중심으로 크레디트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스튜디오 소속 근로자로서 급여 생활을 하다가 수직계열화 해체로 단기계약직으로 신분이 변하였기 때문이었다. 영화산업에서 작가의 크레디트는 세 가지 기능을 가진다고 한다. ‘역사적 사실’로서 진정한 작가를 확인하는 기능, 감독과 제작사에 대항하여 지위를 확보하는 기능, 상표권과 유사한 출처 표시 기능이 그것이다.

사실상 작가의 생계는 크레디트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크레디트는 작가의 작품경력(portfolio) 이므로 실제로 저작재산권보다 더욱 재산권스럽다. 크레디트를 기준으로 방송사용료 등 저작권 이용료가 지급되는 사회에서는, 크레디트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영상물 작가들을 영상물 시장에 머무르게 하므로 영상산업이 작동한다고도 평가한다.
크레디트와 관련한 분쟁은 대부분 시나리오 ‘작가’와 관련된다.
시나리오의 메인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크레디트 순서가 밀렸다거나, 각색을 맡은 감독이 부당하게 ‘각본’ 크레디트에 포함되었다거나, 혹은 실제로 집필에 참여한 감독이 각본 크레디트에 빠졌다는 하소연이 많다.➌ 시나리오 개발과정에서 작가가 교체되는 일이 다반사이고, 감독과 작가 사이 위계질서로 빚어지는 분쟁이겠다.
2009년 서울고등법원은, 영화 <6년째 연애 중>의 첫 시나리오 작가가 크레디트에서 누락되자 성명표시권 침해로 인한 위자료를 인정하였다(2009나2950 판결). 2003년 유사한 사례에서는 법원이 청구를 기각하면서, 복수의 작가가 참여한 경우에 결과적으로 최종 시나리오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경우에만 성명표시권을 인정하였다(<2009 로스트 메모리즈>; 서울중앙지방법원 2003나8359 판결). ‘상당한 기여’를 한 경우에만 성명표시권을 인정한다는 판단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저작권법으로는 (시각저작물 외에는) 저작인격권을 인정하지 않고, 시나리오는 업무상저작물 규정이 적용되는 위탁저작물(commissioned work)로서 저작재산권이 원천적으로 제작자에게 귀속할 경향이 다분하다(미국 저작권법 제201조).
그러한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작가의 크레디트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고 미국작가조합은 자체 규정으로 회원작가의 크레디트를 최대한 3명으로 제한한다. 크레디트가 지저분하면 감독과 제작사에 대항하는 작가의 전투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영화계에서도 ‘상당한 기여’의 범위에 대하여는 자치적인 규범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고, 판례가 쌓이면서 내용이 구체화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미국작가조합의 방식은 참고할 만한 선례이겠다.

감독의 지위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야구 감독이 경기장에서 권위를 독점하며 무한 책임을 지듯, 영화감독은 촬영 현장을 장악하고 모든 부담을 떠안는다. 영화저작자가 감독이라는 데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EU 입법지침(Directive)도 감독을 반드시 저작자로 인정하라고 했다. 영상저작물 특례 규정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든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 온 직종이 있다. 방송연기자들은 방송실연자협회(현재는 ‘방송연기자권리협회’, 이하 ‘방실협’)를 구성하고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여 왔다. 오래 전, 방실협이 주최한 영상저작물 특례 규정 개정 공청회에서 방실협에 거북한 발언을 한 기억이 있다.
“저작권법의 역사에서, 영상저작물은 ‘영화’에서 시작하였고, 영화 저작권 논의는 감독의 권리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영화산업을 도외시하고 더구나 저작자의 권리를 건너뛰어 방송실연자의 권리를 강화하자니 균형이 몹시 안 맞는다. 어떻게 해서라도 영화산업과 같이 한다는 모습을 보여야 설득력이 있지 않겠는가?”
영화감독협회나 영화배우협회의 현황을 모르고 한 말은 아니었다. 방송 산업이 급팽창하면서 영화만 고집하는 영화배우로는 안성기씨가 유일하니 영화배우협회의 위상이 말이 아니다. 2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영화감독협회 이사장 선거를 훔쳐 볼 기회가 있었다. 영화감독은 평생 한 편만 찍어도 죽을 때까지 ‘감독님’이다. 겉은 화려해도 소박한 생활인이 대부분인 것이다. 단체의 정관이 대체로 그렇듯, 영화감독협회 이사장 선거 투표권은 회비를 낸 회원 감독만이 행사한다. 선거 직전에 수십 명 감독의 밀린 회비가 10만원 수표 다발로 한꺼번에 입금이 되었다.
어느 후보가 자기 진영의 감독들 2년 치 회비를 한꺼번에 대납하고 투표권을 행사하게 한 것이었다. 낙선한 경쟁 후보가 항의를 하였고 선거무효소송으로 법정다툼이 되었다.
그 무렵에도 영화감독협회 이사장 후보는 ‘감독의 저작권 확보’를 공약으로 내 걸었다. 그런데 당선 이후 정치활동에 몰두하는 이사장은 보았어도 저작권 확보를 위해 노력하는 이사장을 만나지는 못했다. 그래서 “우리나라 영화감독들은 부자들인가 보다.” 실없는 소리를 하고 다녔다. 흥행에 성공한 감독들이 제작자로 변신하면서 정작 감독의 권리에는 더욱 무관심해진 면도 있다.

어떻게 불공정을 극복할 것인가?시나리오 작가들이 크레디트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감독들이 저작권법 개정안을 연구하고 있다.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법이 틀렸으면 법 개정도 검토하여야 하고, 부당한 사례가 있으면 법원도 찾고, 한국저작권위원회나 영화진흥위원회의 도움도 받을 만 하다. 외국, 특히 법체계가 유사한 일본의 예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일본 저작권법도 영상저작물의 저작권, 저작인접권을 제작자에게 몰아준다. 이른바 저작권의 당연귀속이다(제29조).
그런데, 일본의 감독협회는 제작자연맹과의 단체협약으로 저작권을 일부 행사하고 있다. 영화를 TV에서 방영하는 등 2차적 사용의 경우에 감독이 보상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화가가 미술품의 경매에서 추급권(droit de suite)을 행사하듯 , 비디오 대여료의 3.3%, 판매가의 1.75%를 추가보수로 얻다가 2006년부터는 인터넷 전송에 대하여도 성과를 얻고 있다. 법이 문제이면 당연히 법을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법 개정은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개정법이 의외의 후유증을 가져오는 예도 적지 않다. 그래서 현재 가지고 있는 제도에 의한 해결을 먼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예술인복지법의 계약규정과 표준계약서도 꽤 훌륭하다. 무엇보다 일본이 수십 년 전부터 단체협약으로 감독의 권리를 챙기고 있다는 점은, 우리사회의 경직된 분위기를 돌아 볼 때, 의미하는 바가 너무나 크다.

➊ 영화산업의 수익률이 +를 기록하는 나라는 손꼽을 정도이다.
➋ 홍승기, “드라마 극본의 소설화에 관한 쟁점”, 『계간저작권』 제115호 (2016 가을호), 231~234쪽.
➌ 『영화산업 불공정행위 유형분석 및 공정환경 조성을 위한 영화인 인식도 조사』, 영화진흥위원회, 2016, 17쪽.



글 _ 홍승기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저작권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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